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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세계 문화유산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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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관리자
  • DATE17-11-30

본문

위치

루앙쁘라방은 라오스 북부 중심에 위치해 있다. 루앙쁘라방 북쪽으로는 우돔싸이, 퐁살리, 후아판이 있으며 남쪽 및 남서쪽으로는 비안찬과 사이야불리가 있고 동쪽으로는 씨엥쿠앙이 있다. 

*총 면적: 16, 875 km²   

인구

루앙쁘라방시에는 12개의 독특한 소수 민족으로 이루어진 약 40만 명 남짓의 인구가 살고 있다. 크무 (Khmu)족이 가장 큰 소수 민족으로 전체 인구의 대다수(약 44퍼센트)를 차지한다. 몬크메르어를 사용하는 크무족은 산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며, 라오스의 가장 오래된 정착 부족으로 전해진다. 두 번째로 큰 소수 부족은 흐몽(Hmong)족으로, 인구의 16퍼센트를 차지한다. 주로 저지대 협곡과 루앙쁘라방 마을에 흩어져 살아가는 라오룸(Lowland Loa)족은 지역 총 인구의 39퍼센트를 구성하고 있다.

역사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최소 기원 전 8000년경부터 루앙쁘라방 지역에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라오스 왕국인 란쌍(Lane Xang) 왕국은 14세기 경 파응움(Fa Ngum) 왕이 현재의 시엥쿠앙(Xiengkhouang), 코랏 고원(Khorat Plateau), 그리고 루앙쁘라방 지역을 정복, 통일하여 창건하였다. 처음에는 므엉 스와(Muang Swa)라 불리던 이 도시의 명칭은 지역 거주민들이 바꾸어 부르면서 1357년 므엉 씨앙 동(Muang Xieng Dong), 혹은 므엉 씨앙 통(Muang Xieng Thong)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파응움 왕이 크메르제국에서 보낸 파 방(Pha Bang)이라는 황금 부처상을 선물로 받으면서 이 번창하던 도시 국가는 루앙쁘라방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545년 셋타티랏(Setthathirath) 왕이 루앙쁘라방에서 비안찬(Vientiane)으로 천도하였지만, 루앙쁘라방은 이후로도 라오스의 종교 중심지로서 그 위용을 유지하였다. 17세기 중반 수리나 봉사(Surigna Vongsa) 왕 시대에 서양 선교사들의 첫 유입이 이루어졌다. 1694년 수리나 봉사 왕이 서거하자 란쌍 왕국은 비안찬, 참빠삭(Champasack), 그리고 루앙쁘라방 세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검은 깃발(Black Flag)의 약탈자들이 루앙쁘라방을 습격해 부처상, 절 사원, 역사적 문서 등을 파괴했다. 시사방 봉 왕(1904년-1959년)때 파괴된 유물들을 복구하는 작업이 이루어져 당시 복구된 유물들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이와 더불어 19세기 후반에는 프랑스식 건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라오스, 태국, 미얀마, 중국 식의 건축 양식이 가미되었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갖고 있는 루앙쁘라방은 수도원, 탑, 전통 의상 등 문화 유산이 풍부한 라오스 문화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다.

1995년, 유네스코는 루앙쁘라방을 세계 문화 유산지로 지정하여, 아름답고 평화로운 루앙쁘라방을 보존하기 위한 지역적, 국가적, 전세계적인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루앙쁘라방의 아름다운 사원과 목재 건물, 식민지 시대의 집, 식물과 바위의 조화가 뿜어내는 걸출한 자연경관은 세계 문화유산지로 지정되는데 부족함이 없다. 

  

 

출처: 라오스 관광청